목욕탕

시골 목욕탕을 되살린 청년 창업가의 이야기

jaeney 2025. 6. 29. 06:24

목욕탕

 

 

 

서울을 떠나 시골 목욕탕으로 내려온 이유

경상북도 안동의 작은 마을 '신평리'에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독특한 장소가 있다. 겉으로 보기엔 오래된 시골 목욕탕이지만, 내부는 따뜻한 족욕 공간과 북카페, 작은 전시장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이다. 이 목욕탕을 다시 살려낸 사람은 바로 34세 청년 창업가 정진우 씨. 그는 서울에서 영상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2021년, 돌연 고향 근처인 안동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폐업한 시골 목욕탕을 리모델링하겠다는 다소 무모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엔 저도 미쳤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왜 하필 목욕탕이냐고요. 그런데 저는 그게 너무 끌렸어요. 사람이 사라진 공간인데, 구조는 그대로 살아 있고, 그 안에 흐르던 시간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거든요.” 정 씨는 목욕탕이라는 장소가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사람과 기억이 함께 머물렀던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리모델링, 돈보다 어려웠던 건 ‘사람들의 이해’

 

정진우 씨가 인수한 목욕탕은 1998년부터 운영되다가 2012년에 폐업했다. 내부는 방치된 지 오래라 배관은 녹슬고, 천장엔 물이 샜고, 기계실엔 쥐 사체가 굴러다닐 정도로 심각했다. 리모델링은 단순한 구조 수리가 아니라 공간에 대한 완전한 해석과 재배치였다. 그는 공간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사람들이 다시 머물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고민했다.

 

정 씨가 리모델링에 들인 총 비용은 약 6천만 원. 이 가운데 절반은 소진한 적금이었고, 나머지는 경북도청에서 운영하는 청년 농촌정착지원금과 지역문화재생 공모사업을 통해 마련했다. 하지만 비용보다 더 어려웠던 건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처음엔 진짜 냉담했어요. ‘도시에 못 적응해서 내려왔나’, ‘저런 게 되겠냐’는 얘기도 들었고요. 아예 외면당했죠.”

 

그러나 공사 후반부, 마을 어르신들이 하나둘 목욕탕 앞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어르신 중 한 분이 조용히 ‘옛날엔 여기서 다 같이 탕 속에 앉아 정치 얘기했는데’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순간 확 왔어요. 아, 이분들이 단순히 씻는 걸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의 관계와 대화를 그리워하고 있구나 싶었죠.”

 

공간은 온기를 회복하고, 마을은 다시 말을 걸었다

 

2022년 여름, ‘신평탕’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연 시골 목욕탕은 전통 구조를 최대한 살린 족욕 공간과 소형 북카페, 마을공방, 작은 도서전시실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내부에는 옛 간판, 낡은 수건걸이, 목욕 바구니 등 과거의 흔적을 일부러 남겼고, 입장료 대신 “차 한 잔 값”이라는 이름으로 자율 기부함을 운영했다.

 

그 공간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귀촌을 고민하는 청년들, 슬로우 라이프에 관심 있는 여행객, 동네 학생들까지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에는 ‘신평 목욕탕 음악회’, ‘마을 북토크’, ‘할머니 손글씨 전시’ 같은 소규모 행사가 열렸다. 무엇보다도 변화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시작됐다.

 

“그전까지 어르신들은 저를 ‘이상한 도시청년’으로 보셨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지나가다 저를 부르고, 국수도 싸주시고, 마을 대소사도 알려주세요. 목욕탕을 다시 연 게 아니라, 관계의 문을 연 것 같아요.” 정진우 씨는 이렇게 말한다. 공간이 변하면 사람도 변하고, 사람과 사람이 다시 만나면 마을 전체가 달라진다고 믿게 됐다.

 

“시골 목욕탕은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정진우 씨는 지금도 매일 오전마다 ‘신평탕’의 족욕탕 물을 점검하고, 커피 머신을 닦고, 마을 도서 전시 코너를 손질한다. 공간은 작지만 할 일이 많다. 운영비는 매월 40만~60만 원 선이지만, 그는 이 수익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수익이 목적이면 처음부터 안 했겠죠. 저는 이 목욕탕이 가진 ‘사람을 모으는 힘’을 믿었어요.

그는 지금 ‘시골목욕탕 재생 컨설팅’을 요청받아 인근 지역에도 작은 강의를 다니고 있다. 전국에는 폐업한 목욕탕이 수백 개가 넘는다. 그중 대부분은 방치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추억과 관계, 공동체의 단서들이 남아 있다. “이건 단순한 건물이 아니에요. 저는 시골 목욕탕이야말로 지역 공동체를 다시 연결해주는 작고 강한 매듭이라고 생각해요.”

정 씨의 사례는 단순히 한 청년의 창업 성공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 지역, 한 마을, 한 세대 간의 단절을 회복하는 실천의 기록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시골 목욕탕이 새로운 세대에 의해 다시 문을 열 수 있다면, 이 땅의 수많은 마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