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목욕탕, 폐업 위기에서 지역 명소로 바뀌기까지
문을 닫았던 시골 목욕탕, 다시 불을 켜다
한때 시골의 중심이었던 작은 목욕탕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고령화, 인구 감소, 운영비 상승, 시설 노후화 등 여러 이유가 맞물리며 전국적으로 시골 목욕탕의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몇몇 시골 목욕탕은 놀라운 전환을 이루며 지역 명소로 거듭나는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탕을 다시 끓인 것’이 아니라, 공간의 의미를 완전히 재해석하고 사회적 가치를 불어넣는 방식으로 부활한 것이다.
목욕탕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다. 지역 공동체의 기억이 스며든 장소이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던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폐업 위기의 시골 목욕탕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은 지역 공동체의 재생 과정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이 글에서는 실제로 폐업 위기였던 시골 목욕탕이 어떻게 지역 명소로 바뀌었는지, 그 변화의 단계와 핵심 요인을 살펴본다.
폐업 위기부터 부활까지, 한 시골 목욕탕의 여정
전라북도 임실군 한 마을에 위치한 ‘임실온천탕’은 2018년 운영 중단 이후 방치돼 있었다. 녹슨 배관, 금이 간 타일, 꺼진 천장, 그야말로 폐건물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 목욕탕은 한때 마을 어르신들이 모이던 중심이었지만, 10년 전부터 이용객이 줄어들며 운영이 어려워졌다. 주인도 도시로 이주하며 시설은 그대로 방치됐다. 그러나 2022년, 이 건물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계기는 귀촌한 30대 청년 부부의 제안이었다. 부부는 마을 회의에서 “이 건물을 그냥 두기보다, 마을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마을 주민 대부분이 찬성했다. 이후 부부는 군청의 유휴시설 리모델링 공모사업에 응모해 약 3천만 원의 보조금을 받아냈다. 그들은 직접 설계도 그리고, 마을 목수들과 함께 내부 보수 공사를 진행했다. 탕은 족욕장으로 바꾸고, 탈의실은 회의 공간과 미니 북카페로 개조했다. 전체 리모델링 기간은 약 4개월이었고, 예산은 4천5백만 원 내외로 마무리됐다.
다시 찾는 공간으로 만든 전략 3가지
임실온천탕이 단순한 복구를 넘어 ‘명소’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 가지 전략적인 접근이 있었다.
첫째, 기억을 지운 것이 아니라 남긴 것이다. 건물의 외벽은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했고, 타일 벽면의 일부 낡은 부분도 그대로 남겼다. 세면기 위엔 ‘온수는 오른쪽’이라는 낡은 안내 문구도 유지됐다. 이런 요소들은 방문자들에게 과거의 정서를 자극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둘째, 목욕이라는 기능을 완전히 지우지 않았다. 탕 안은 건조시켜 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일부 구간에는 따뜻한 물을 받아 족욕 체험이 가능하도록 구성했다. 어르신들은 여전히 ‘따뜻한 물’이 있는 공간을 원했고,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은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셋째, 공간의 기능을 다양화했다. 단지 복지 공간이 아니라, ‘마을 역사 전시 코너’, ‘청년 창업가 북토크 모임 장소’, ‘작은 영화상영회 공간’ 등으로 활용하며 지역 외부와의 연결 지점을 만들었다. 마을 단위 공간이 도시 사람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가도록 설계한 것이다. SNS를 통해 공간 사진이 퍼지면서 외부 방문자 수도 점점 늘어났고, 현재는 월평균 방문객이 500명을 넘는다.
시골 목욕탕의 재탄생, 그 이상의 가치
폐업 위기에서 지역 명소로 바뀐 시골 목욕탕은 단순한 공간 재생의 성공 사례를 넘는다. 그것은 공동체 재생, 관계 회복, 지역 정체성 회복이라는 가치를 상징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누군가가 돈을 들여 다시 연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기획 회의에 참여하고, 직접 벽을 칠하고, 가구를 고르고, 공간 이름까지 함께 정한 것이다.
그 결과, 공간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마을 공동의 자산이 되었다. 또한 이 공간은 현재 소규모 수익 모델도 확보하고 있다. 족욕 체험 프로그램(1인 3천 원), 북카페 음료 판매, 기념품 제작 등을 통해 월 40만 원 내외의 운영 수익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운영 유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시골 목욕탕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적절한 아이디어, 주민 참여, 소규모 예산만으로도 이 낡은 공간은 다시 온기를 가질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시골 목욕탕 부활 사례가 전국 각지에서 이어진다면,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도 따뜻한 공동체는 다시 피어날 수 있다.